[문화산책]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2024-06-08     임동현 기자
서울시립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서양의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바로 '천사'다. 곱슬머리에 하얀 피부, 하얀 날개로 대표되는 천사는 종교의 상징이기도 했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기원이 담긴 당시의 캐릭터이기도 했다. 천사는 '천상과 지상을 잇는 중간적 존재'로 여겨진다. 실제 한자어를 살펴봐도 천사(天使), 즉 하늘의 사자라는 의미다. 누구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익숙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천사다.

천사는 신성성을 지님과 동시에 사랑스러움도 지니고 있었고 언젠가 만나고 싶은 존재, 한 번쯤 자신에게 다가왔으면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연인의 사랑을 맺어주는 화살을 쏜다는 '큐피트' 역시 천사다. 하얀 날개를 가진 귀여운 천사 앞에서 감히(?) 악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사랑을 느끼는 존재.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마음을 주고픈 사람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이,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 역시 '천사'라고 부른다. 심지어 학점을 기대 이상으로 준 교수, 잘못을 눈감아준 상사에게도 '천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임동현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하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천사들과 다정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이번에 만들어졌다.  지난 3일부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미경 작가의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이 그것이다.

30여년간 비누를 소재로 서양의 고전 조각상, 동양의 불상, 도자기 등을 표현했던 신미경 작가는 이번에는 서양 미술의 주소재이자 우리의 상상 속에 인식되어 있는 '천사'를 비누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어린이들과 함께 비누에 천사를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신 작가는 천사를 '천상과 지상,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영역에 있는 존재'로 표현한다. 즉 '존재와 부재 사이에 있는 대상'으로 천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의 재료로 사용된 비누는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닳아 없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덩어리'로 존재하다가 쓰고 쓰고 또 쓰면 결국 거품으로 사라지는 '부재'의 존재가 되는 것이 비누다. 점점 닳아없어져가는 비누를 통해 존재와 부재 사이를 오가는 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미경

전시관에 있는 남녀 화장실에는 비누로 만든 천사상들이 각각 놓여져있다. 이 작품은 천사상이면서 동시에 비누로 관람객들은 손을 씻으면서 작품을 만지고 비누칠을 할 수 있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만지고 작품을 비누로 사용하면서 점점 닳아없어져가는 모습까지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관람객들도 직접 작품을 만지고 문지를 수 있기에 비누의 감촉, 나아가 작품의 감촉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이는  닳아없어짐을 오히려 새로운 예술의 표현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며 이를 통해 작품과 관람객은 문턱 없이, 거리 없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

어린이갤러리2에서는 또 세 가지 종류의 '엔젤' 향유로 천사를 표현하는 드로잉 작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체험은 눈으로 천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통해 천사를 만나는 체험이다. 종이 위에 손이 가는 대로 향유를 붓고, 향유가 만들어내는 모양을 따라 색연필로 색칠을 하면 조금씩 형태가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천사가 다녀간 흔적, 천사가 존재하는 흔적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또 역시 어린이갤러리2에 있는 '엔젤 시리즈'에는 작가가 만든 다양한 천사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각각의 다른 색깔과 더불어 바깥이 보이는 뒷배경이 작품의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한다. 마치 교회와 성당의 스테인글라스처럼 바깥의 날씨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맑은 날의 햇빛과 투명 비누 자체의 빛의 조화는 물론이고 흐리고 비가 오는 날 빛이 줄어들 때의 모습, 가을 낙엽지는 배경과 겨울 눈이 내리는 배경에 따라 천사들이 어떻게 달리 보일지가 전시를 보는 또 하나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다.

날씨에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어린이 전시이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 등 행사들도 마련되어 있다. 전시 기간 또한 내년 5월 5일 어린이날까지이기에 여름과 겨울방학, 내년 어린이날까지 어린이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린이 전시'가 '어린이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가족과 연인, 혹은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껴질 때 혼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잃어버렸던 천사의 기억, 그 기억을 찾으며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찾아볼 수 있는 전시다.

사족 : 전시를 보면서 뜬금없이 김성호가 부른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전시장 안에도 비누로 만들어진 천사가 있었지만 전시장 주변에, 내가 거니는 길 주변주변에도 천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어쩌면 천사는 누군가의 모습으로 지금 당신 앞에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전시장에서 그 희망을 떠올려보길.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