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1만을 향해] 절망을 스스로 깨뜨리려는 강인한 '조선인 여공'이 있었다
[독립영화, 1만을 향해] 절망을 스스로 깨뜨리려는 강인한 '조선인 여공'이 있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8.0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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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감독 '조선인 여공의 노래'
'빨간색 댕기'를 매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조선인 여공들. (사진=시네마 달)
'빨간색 댕기'를 매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조선인 여공들. (사진=시네마 달)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일본의 강제 침략으로 인해 조선의 경제가 무너지던 시기, 10대 조선 소녀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일본의 방적공장으로 향했다. 전 세계의 면 산업을 주도하고 있던 일본 오사카의 방적공장이었지만 이 방적공장이 조선 소녀들에게 제공한 것은 차별과 열악한 대우였다.

적은 급료, 부실한 식사, 2교대로 진행되는 잔인한 스케줄, 심지어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에게도 당해야했던 성적 착취와 폭력까지. 그러나 10대의 여공들은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그렇게 당당한 여성으로 이들은 살아남는다.

이원식 감독의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온갖 핍박과 압박 속에서도 누구보다 강하고 주체적이었던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와 흔적을 전한다. 신남숙, 김순자, 김상남 등 생존 여공들의 증언과 함께 당시 상황을 기록한 여공들의 일기가 소개되고 배우들이 방직 공장 여공들의 삶을 재연하고 일기를 직접 낭송한다. 영화 <귀향>에 출연한 재일코리안 4세 배우 강하나는 이 영화에서 연기와 함께 프리젠터로 나서 생존 여공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자신들의 삶을 지켜온 여공들. (사진=시네마 달)
자신들의 삶을 지켜온 여공들. (사진=시네마 달)

이 영화는 우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섞은 형식을 취하면서 특히 여공들의 생존기에 집중하고 있다. 12시간의 고된 노동 속에서 졸다가 실을 끊어먹으면 매질을 당해야하고 과로와 영양 부족으로 쓰러지고 전염병에 노출됐다. 편지조차 제대로 보내지도, 쓰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조선인 친일단체인 '상애회'까지 이들을 핍박했다. 가뜩이나 낮은 임금을 뜯어먹고 폭력을 가한 이들은 놀랍게도 조선인 남성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존을 위해 손을 잡고 걸어갔다. 배가 고프면 이들은 일본인들이 쓰레기로 버린 소, 돼지의 내장을 구워먹었고, 일본인들은 이 여공들을 향해 '조선의 돼지들'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쓰레기로 여겼던 '호루몬(오사카 사투리로 '쓰레기'를 의미)'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일본인이 좋아하는 인기 음식이 됐다. 어린 여공들의 삶의 투쟁이 이런 식으로 일본을 움직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글을 모르는 서러움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야학을 열어 한글을 공부했고 마침내 일본 방적 공장에서 근로환경 개선, 부당해고 철회를 목적으로 직접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쟁의에 들어갔다. 일본 경찰과 폭력단의 과격 진압으로 쟁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은 '빨간색 댕기'를 매며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실패했음에도 당당히 걸어가는 여공들의 모습이다.

프리젠터로 출연한 배우 강하나. (사진=시네마 달)
프리젠터로 출연한 배우 강하나. (사진=시네마 달)

<조선인 여공의 노래>가 돋보이는 이유는 10대 어린 여공들을 '피해자'로 묘사하기보다는 '절망적인 환경을 스스로 깨뜨리려는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100년 전에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권력에 맨몸으로 맞선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원식 감독 자신도 2017년 오사카의 한 중학교 담벼락에 박힌 오래된 철제 십자가를 발견했고 그것이 당시 방적공장이 조선인 여공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세운 철조망 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선인 여공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를 추적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기록의 힘'을 우리에게 전한다. 배우들이 직접 낭송하는 여공들의 기록은 그 당시 상황을 바로바로 글로 옮긴 것이며 그로 인해 명확한 기억을 전달해 우리에게 당시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오래된 '증언'은 기억에서 사라진 것을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쓴 기록은 오랜 기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전하는 기록은 그 어느 증언보다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질문한다. 지금 이 상황이 과연 그 당시에 한정된 이야기일까? 차별과 편견, 열악한 노동 환경은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고스란히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죽음, 낮은 임금과 차별, 폭언 속에 시달려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여전히 '생존'을 외쳐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지금의 당신은 조선인 여공을 '돼지들'이라 욕한 일본인들과 정말 다른 사람인가?' 이제 우리가 답을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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