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럴 듯한, 보이는 듯한' 작가의 상상력을 즐겨보자
[문화산책] '그럴 듯한, 보이는 듯한' 작가의 상상력을 즐겨보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7.0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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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개인전 '삼삼'
'현판프로젝트 쿵쿵'. (사진=임동현 기자)
'현판프로젝트 쿵쿵'.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저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의 한 일화. 어느 날 김삿갓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돈은 많았지만 굉장히 인색한 사람이었다. 다음날 이 집주인이 집의 현판(당호) 때문에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김삿갓은 자신의 달필로 '귀락당(貴樂堂)'이라고 적어주고 훌륭한 대접을 받게 된다. 귀할 귀자에 즐거울 락. '귀하고 즐거운 집'이라니 이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

그런데 옛날 현판 이름은 오늘날과 반대로 맨 오른쪽부터 쓰기 마련. 김삿갓이 가고 난 뒤 주인이 이를 거꾸로 읽어보니 '당락귀'가 됐다. 즉 '당나귀'라 그 말이다. 졸지에 '당나귀 집'이라는 오명을 받게 된 주인은 노발대발했지만 이를 어쩌랴. 현판을 고치자니 또 돈이 들고 무엇보다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글씨였다. 결국 그는 귀락당, 아니 당나귀 현판을 그대로 걸어두어야 했다.

이슬기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이슬기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지난달 27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이슬기 작가의 개인전 <삼삼>은 작가가 몇 달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고안해낸 <현판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설치 작업과 벽화 작업,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한 진주명주 등의 작품들이 선보이는 자리다.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 이슬기 작가는 조각과 설치 작품을 통해 세계 여러나라의 민족적인 요소와 일상적 사물, 언어를 표현하면서 독창적인 시선과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특히 세계 각지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의 틀 속에서 시대와 장인의 손길을 통해 변화하는 것들을 소환해낸다. 한국의 단청과 문살, 통영의 누비이불, 멕시코의 지방 전통 바구니 조합 등은 공예가 표출하는, 손으로 표현하는 질서에 작가의 시선과 해석을 더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작품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먼저 선사 시대 및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 발견되는 여성 신체의 표현을 모티브로 한 <쿤다리>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벽화 <모시 단청>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인류의 토착 문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성의 원형을 모티브로 이를 기호와 도형, 도식을 통해 재해석한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터에 있던 회전 놀이도구 같기도 하고 원들이 한데 연결되어 있는 듯한 모습인데 선사 시대 사람들이 그렸던 그림이 하나의 언어로 새로 태어난 것처럼 작가가 표현한 선과 기호가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쿤다리 거미'. (사진=임동현 기자)
'쿤다리 거미'. (사진=임동현 기자)

단청과 문살 장인들과 함께 하면서 직물의 직조 방식을 벽화로 표현한 <모시 단청>에 이어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로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불프로젝트 : U>다. 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느낀 생각은 '만지고 싶다'였다. 다양한 뉘앙스들이 진주명주로 표현이 되는데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공예를 새로운 미술의 장르로 승화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게 된다.

빛이 반사되는 진주명주의 특징이 작품을 더 밝게 보이게 하고 촘촘하게 구성된 작업은 회화로는 부족한 입체감을 살려준다. 장르의 협업, 그리고 이를 통해 공예가 대중들에게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U 부아가 나다'. (사진=임동현 기자)
'U 부아가 나다'. (사진=임동현 기자)

그리고 이제 <현판프로젝트>다. 현판에는 누구나 '귀락당' 같은 격 있고 멋진 의미의 글을 쓰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슬기의 현판에는 '쿵쿵', '꿍꿍', '쾅쾅' 같은 단어가 표현되어 있다. 김삿갓이 '당나귀'라고 주인을 놀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특정한 의미가 없다. 이는 곧 하나의 현판을 놓고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자 중요한 이름을 새겼던 '현판'의 허세(?)에 대한 반란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통을 살리면서도 뒤집고 이어가면서도 고쳐가는 작업들이 바로 이슬기 작가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전시명인 <삼삼>은 '삼삼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외형이 그럴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하다' 등이 '삼삼하다'의 뜻이라고 한다. 그럴 듯, 보이는 듯. 이는 고정된 시선, 고정된 의미는 없다는 의미로 봐야할 것이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거론하고 다채로운 의미를 보여주는 이슬기 작가의 작품들. '그럴 듯해 보이는' 이슬기 작가의 상상력을 이제 관람객들이 즐길 차례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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